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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기도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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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미연합감리교회
조회 1,001회 작성일 20-05-1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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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사랑하는 가족, 친척, 교회 교우, 이웃들이 원치 않는 일들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된 경험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남는 아쉬움과 한탄은 바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몇 년을 빼놓지 않고 기도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이 무심 하시나?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렇게 하는 중보기도는 다 무슨 소용이냐? 교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혼란과 의문에 직면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 믿는 자들의 거룩한 의무이며 교회의 귀한 

사역이기도 합니다. 

중보기도함에 왜 응답이 없는 것, 믿는 자라면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해보아야 하지 

않나 합니다. (한 목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첫째, 사실 저는 이런 일을 만날 때마다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왜 응답해 주시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는 "혹시나 내 기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뭘 좀 달리 했더라면 그 교우가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더 앞섭니다. 물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개입하여 불치의 병이 완치되는 

일이 오늘날에 여전히 일어나지만, 그것은 다만 예외적인 일이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아무리 

신유의 은사가 강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마다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외적으로 개입해주었으면 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분노하게 됩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도대체 우리가 

기도를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하나님, 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투정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중보기도를 통해서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한 어떤 기도나 봉사 때문에 주신 대가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이적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강제하여 

일어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것을 어떻게 사용하실 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할 일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저 

자신에 관한 문제나 교우에 관한 문제를 위한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 제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더니 이렇게 응답해 주셨군요!"라고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 제 기도가 이 같은 응답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이건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셋째, 오래도록 교회적으로 중보기도를 해 온 병자가 세상을 떠나면, 때로 "그렇다면 

중보기도는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도를 

너무 좁게 보는 데서 생기는 질문입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움직이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사랑의 제물입니다. 포사이스(Forsyth)는 

<영혼의 기도>(The Soul of Prayer, 복 있는 사람 간)에서 "중보기도는 내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옮겨다 놓는 일이다"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넷째, 기도의 초점은 그 사람의 전인적인 구원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어떤 신유의 은사로 유명했던 목사님이  부흥집회를 갈 때마다 자신을 통해 치유 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고 합니다. 말년에 그 수를 헤아려 보니 수만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후에 자신이 집회를 했던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예전에 

치유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열에 일곱 여덟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그  목사님은 

신유의 은사를 가져가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부흥회를 인도한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였는데, 신유의 은사 때문에 오히려 영혼 

원에 장애가 있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교우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의 간구의 

초점을 치유에 집중하는 동시에,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간구할 때 항상 이 4가지의 기도 포인트를 생각하며 오늘도 

더 깊이 주님을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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